쇼장의 조명이 거의 꺼진 채로 음악이 시작됐다. 어둠 속에서 흰 셔츠 드레스 한 벌이 천천히 걸어 나왔고, 객석은 숨을 죽였다. 화려한 장치 없이도 한 벌의 옷이 무대를 채울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순간이었다.
드레스는 단순했다. 앞을 길게 여미는 단추, 허리를 묶는 같은 원단의 끈, 발목까지 떨어지는 길이. 장식이 없으니 원단이 움직이는 모양이 그대로 보였다.
덜어 낸 무대가 남기는 것
요즘 쇼는 점점 커진다. 거대한 세트와 유명인 객석이 옷보다 먼저 기사에 오른다. 그래서 이렇게 조용한 무대가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. 보는 사람이 옷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.
옷을 보여 주고 싶다면 옷 말고 다른 것을 줄이면 됩니다.
한지호, 디자이너
흰 셔츠 드레스는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다. 굵은 니트 카디건을 어깨에 두르거나 가죽 벨트로 허리를 바꿔 묶으면 계절이 바뀌어도 오래 입을 수 있다.